본문 바로가기
나의일상일기/여행

강화도 전등사

by 찬란원 2012. 8. 17.
728x90

지난 2012.8.14(화) 부터 8.15 (수) 1박 2 일동안 강화도에 여행하였다.

첫 번째 여행지인 전등사를 둘러본다.

▣ 전등사 소개

 

 전등사(傳燈寺)는 대한민국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온수리의 정족산에 위치한 사찰이다.

 정족산성 안에 자리잡고 있으며, 대웅전, 약사전, 범종 등 대한민국의 보물이 소장되어 있다.

경내에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던 정족산 사고가 있다.

고구려 시기부터 사찰이 세워져 여러 차례 이름을 바꾸고 중수되었다.

전등사란 이름은 고려 후기 충렬왕때 붙여진 것이다. 현재의 건물은 조선 광해군때 중수된 것이다

 역 사

  고구려 소수림왕 11년인 381년아도화상이 창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현존하는 한국의 사찰 중 가장 역사가 길다.

  아도화상이 처음 절을 지을 때는 진종사(眞宗寺)로 명명했다.

  고려 고종 46년인 1259년에 진종사 경내에 가궐을 지은 것으로 다시 기록에 등장한다.

  고려는 1232년부터 1270년 사이 강화도에 임시 도읍을 정했다. 1266년 진종사는 크게 중창되었으며,

  충렬왕 8년인 1282년 충렬왕의 왕비 정화궁주가 진종사에 시주한 것을 계기로 전등사로 이름이 바뀌었다.

  전등은 ‘불법(佛法)의 등불을 전한다’는 뜻으로, 법맥을 받아 잇는 것을 뜻한다. [2]

  고려 왕실은 전등사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여 계속해서 중수가 이루어졌으나,

  조선 광해군 대에 이르러 화재로 건물이 소실되어 1621년 재건되었다.[3]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던 마니산 사고가 병자호란으로 훼손된데다

  효종 4년(1653년) 화재로 소실되자 1660년 전등사 경내에 정족산 사고를 설치하고 실록을 보관하게 하였다.

   정족산 사고는 적장산, 오대산, 태백산과 함께 조선 후기의 실록 보관소가 되었다.

   1707년, 강화 유수였던 황흠은 사고를 고쳐 짓고, 다시 별관을 지어 취향당이라 이름하였다.

    그때부터 정족산 사고는 실록은 물론 왕실의 문서까지 보관하는 보사권봉소로 정해졌다.

    1726년에는 영조가 직접 전등사를 방문해 ‘취향당’ 편액을 내렸고,

   1749년에는 영조가 시주한 목재를 사용해 전등사를 중수하였다. [2]

   한때 한용운만공의 상좌인 춘성이 주지로 근무하기도 했다.

 

 

 

 

 

 

 

 

 

 

 

 

'나의일상일기 > 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느린 꼬부랑길  (0) 2012.09.04
강화도 보문사  (0) 2012.08.17
목아박물관에서  (0) 2012.08.10
양양 남애항과 남애1리 해수욕장에서  (0) 2012.08.10
요정이 살 것만 같은 호수  (0) 2012.08.01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