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난세상

“평생 ‘잡초 사랑’… 쓸모없다 취급받던 클로버·억새, 이젠 자원으로”[M 인터뷰]

찬란원 2025. 5. 28.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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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 인터뷰 - 김도순 세계잡초학회장
어릴적부터 나물캐는 재미 눈떠 농생대 진학해 잡초동아리 열고 영국에서 ‘잡초 과학’ 박사학위 콩밭에 자란 산삼은 잡초인가?
원치않는곳에 난 풀도 역할있어 잡초는 잡초로 관리 ‘이초제초’ 제초제 저항성 잡초 연구하고  AI기술 활용 쉬운 방제 노력도
잡초과학 중요성은 더 커질 것

 

[자료출처 : 문화일보   이재희 기자2025. 5. 28. 09:10 ] 

김도순 세계잡초학회장이 14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학 연구실에서 자신이 연구하는 잡초를 들여다보며 “잡초는 인간에게 필요한 다른 식물들과 조화롭게 균형을 이뤄야 하는 풀”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윤성호 기자

 

“잡초 하면 쓸모없는 풀, 뽑아 없애 버려야 하는 풀이라는 생각이 들죠. 하지만 콩밭에 심지 않은 산삼이 자라기 시작한다면 콩이 잡초인가요, 산삼이 잡초인가요?”

지난 2월 제18대 세계잡초학회 회장으로 선출된 김도순 서울대 식물생산과학부 교수는 기자와 만나자마자 질문부터 던졌다. 잡초를 ‘원하지 않는 곳에 나는 식물’로만 생각해왔던 통념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평생 ‘잡초 사랑’ 외길을 걸어온 김 교수를 지난 14일 그의 연구실에서 만났다.

 

농촌에서 태어난 김 교수의 어릴 적 취미는 나물 캐기였다고 한다. 냉이·씀바귀·달래 등 논둑과 밭둑에 한가득 피어 있는 나물을 캐 가면 어머니의 칭찬을 듬뿍 받았다. 초등학교 3학년 땐 떨어진 토마토 씨앗에서 자연 발생한 토마토를 스무 그루나 뒤뜰에 심었다. 그해 배 터지게 토마토를 먹었던 추억은 자연스레 농생대에 진학해 작물 연구를 해야겠다는 결심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막상 서울대 농생대에 진학해 보니 대부분의 연구와 교육은 벼 중심이었다. 중학생 때 부모님의 벼농사를 도우며 힘들었던 기억이 절로 떠올라 흥미가 붙지 않았다. 그러다 잡초를 만났다. 새내기 때 자연대 선배의 비비추(용설란아과의 여러해살이풀) 논문 작업을 도우며 작물이 아닌 식물에 관심을 갖게 됐다.

3학년 땐 잡초과학 수업을 들으며 ‘내가 많은 잡초를 이미 알고 있구나’ 하고 재미를 느꼈다고 한다. 잡초에 빠진 김 교수는 ‘잡초사랑회’란 동아리를 만들었다. 학부 시절엔 산으로 들로 잡초와 야생식물을 찾아다니며 사진을 찍고 연구했고, 대학원에선 ‘잡초연구회(Weed Research Club)’로 개편해 사진 전시회도 열었다.

어려움도 많았다. 잡초과학으로 박사과정에 진학했는데 지도교수의 연구행정 관리에 힘쓰다 보니 잡초 연구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의욕과 열정은 사라지는데, 잡초 연구는 포기하고 싶지 않아 선택한 길이 영국 유학이었다.

농어촌청소년재단의 해외 장학생으로 선발돼 1년에 2만 달러씩 지원받았지만, 1997년 IMF 사태가 터지면서 생활비가 떨어지고 재단 지원금도 중단되는 등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위기가 기회가 됐다. 현지 지도교수가 이런 상황을 알고 손을 내밀어 준 덕분에 연구에 참여하면서 박사 학위를 무사히 마쳤다고 한다.

일평생 ‘잡초사랑회(Weed Love Club)’로 살아온 김 교수의 실험실 슬로건은 ‘Weed Loves Crops(잡초는 작물을 사랑한다)’다. 영어로는 발음이 비슷하지만 뜻은 전혀 다르다. 하지만 바뀐 슬로건이 잡초과학 분야의 변화와 최근 흐름을 반영한다는 게 김 교수의 설명이다. “잡초는 지금까지 작물을 죽이는 풀, 그래서 뽑아 죽여야 하는 풀이었지만 이제는 아닙니다. 잡초는 작물을 사랑합니다. ‘이초제초’, 잡초는 잡초로 관리해야 합니다.”

 

‘원하지 않는 곳에 나는 풀’인 잡초가 학문 초기엔 방제 대상으로만 인식됐지만, 최근에는 잡초의 생태적 역할의 중요성이 재인식되면서 방제가 아닌 ‘관리’의 대상이 됐다는 뜻이다. 이제 잡초는 반드시 뽑아 없애야만 하는 풀이 아니라, 적절하고 조화롭게 인간에게 필요한 식물들과 균형을 이뤄야 하는 풀이 됐다.

그래서 잡초학에서도 자원으로서의 잡초 활용에 관한 연구가 활발하다. 클로버가 대표적이다. 최근 벌 개체 수와 벌꿀 수확량이 감소하면서 문제가 되고 있는데, 클로버가 밀원식물(꿀벌에 먹이를 제공하는 식물)로 쓸 수 있는 자원임이 밝혀진 것이다. 서양민들레 역시 예전엔 보이면 뽑던 잡초였지만 요즘엔 재배해서 차로 끓이거나 나물로 먹는 등 활용도가 높아졌다.

김 교수가 서울대 부임 후 수행한 연구 중 하나는 억새를 바이오매스용 작물로 연구하는 내용이다. 20년 전만 해도 잡초 취급을 받던 억새가 지금은 전 세계에서 수집돼 애지중지 키워지는 작물이 됐다. 김 교수가 대학교 4학년 때 졸업논문을 위해 실시한 첫 연구가 억새를 제초제로 죽이는 실험이었던 탓에 더 의미가 크다고 한다.

그는 이명박 정부 시절 그린바이오 생태계 구축을 위한 바이오매스 사업으로 중국·러시아·연해주의 억새 자원을 들여오려다 중국 정부의 자원 유출 통제를 받았던 기억도 떠올렸다. 결국 밤마다 깨끗이 씻어서 은박지에 싸 오거나 녹차통에 넣어 겨우 들여올 수 있었다. 김 교수는 “문익점 선생님이 목화씨를 들여올 때 이런 기분이셨을까 했다”며 웃음을 터트렸다.

이번에 김 교수가 회장으로 선출된 세계잡초학회가 최근 주목하는 안건은 제초제 저항성 잡초에 대한 연구다. 이들이 어떻게 진화해 제초제에 저항성을 갖게 됐는지, 어떤 유전자가 제초제 저항성을 만들어내는지 유전체학적 기술들을 접목해 연구하고 있다.

특히 최근의 기후변화와 이상기후 현상이 인류의 ‘목숨줄’인 농업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고 있어 잡초과학 연구의 중요성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잡초들은 특히 지구의 온도 상승에 대한 적응력이 강해 작물에 주는 피해도 늘어나고, 비농경지에 발생하는 생태 교란 외래 잡초에 의한 생태계 파괴도 심각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엔 영상과학·인공지능(AI)·로보틱스 기술을 결합해 잡초를 더 정확히 표적화하고, 제초제를 더 적게 써서 방제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드론 등을 통해 작물과 잡초를 함께 촬영해 AI가 잡초만을 구분해내고, 로보틱스 기술로 잡초가 있는 위치에만 정확히 방제하는 기술을 구현해내는 게 목표다.

이 기술이 상용화된다면 농업 인건비를 줄이고 고령화된 농촌인구 문제를 해결하는 등 경제적 유익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영상식물학’이란 용어를 세계 최초로 만들어낸 것 역시 김 교수다. 그는 지난해 창립한 영상식물학회 초대 회장으로서 2년 임기를 수행 중이다. 첨단 과학기술이 접목된 만큼 젊은 후학들의 관심이 크다.

김 교수는 잡초과학이 사회문제의 해법도 될 수 있다고 했다. 지난 3월 경남·북 지역에서 큰 피해를 낳았던 산불 문제 역시 잡초 관리가 답이라는 것이다. 산불은 길가 등 사람의 출입이 잦은 곳에서 주로 발생하는데, 그 주변 식생이 유도체 역할을 하고 부엽토 속에 숨어 있는 잔불이 되살아나면서 불이 크게 번지는 만큼 식생 관리만 잘해도 산불을 상당히 예방할 수 있다고 한다.

농업과 잡초과학은 저출생·고령화 현상과도 맞닿아 있다. 김 교수에 따르면 척추·관절 질환 등을 유발해 농민들을 가장 힘들게 하는 원인이 바로 잡초다. 농촌 인력이 풍부하던 시절엔 인력을 활용한 방제가 큰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이젠 농업 인구가 감소하고 고령화되고 있어 잡초 방제가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이다. “첨단 기술을 활용한 잡초과학이 답이 될 것”이라고 김 교수는 전망했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김 교수는 “잡초과학은 주제가가 있는 학문”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가수 나훈아의 ‘잡초’ 이야기다. “‘아무도 찾지 않는 바람 부는 언덕에 이름 모를 잡초야’라는 가사처럼 잡초는 질기고 강한 생명력과 불굴의 의지를 상징합니다. 잡초과학이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것뿐 아니라 여러분께도 즐거움을 드리길 바랍니다.”

“겨울철 ‘빈 포도밭 관광화’ 美 내파밸리처럼… 가치농업으로 대전환 필요”

■ ‘지속가능 농업’ 되려면

“정책·R&D 단기적 성과에 매몰 10년 이상 끌고 갈 시스템 필요 韓에 맞는 K-GMO도 개발해야”

“농업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하는 산업입니다. 농업의 지속가능성은 결국 인류의 지속가능성과 동등한 거죠.”

 

김도순 서울대 식물생산과학부 교수는 지난 14일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농업 정책과 연구·개발(R&D)이 “지나치게 근시안적이고 단기적 성과에 매몰돼 있다”는 쓴소리를 내놨다. 정책 결정자들이 짧은 임기에 부합하는 정책만 펼치고, 일관성이 없다 보니 농업의 근본 가치가 훼손된다는 지적이다.

농업 기반을 구축하는 데는 다른 어느 산업보다도 오랜 기간과 막대한 투자가 필요한데, 기후변화와 이상기후로 농업 기반이 붕괴되면 지역 농업은 물론 지역사회 전체의 존립이 위태로워진다고 김 교수는 설명했다.

그는 “장기적 안목에서 한 프로젝트당 10년 이상 끌고 갈 수 있는 인프라, 정부가 바뀌더라도 연구가 안정적으로 지속될 수 있는 시스템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제언했다.

김 교수는 이어 “생산 중심 농업에서 가치 중심 농업으로 대전환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은 농지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므로 제한된 농지에서 생산 한계에 직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김 교수에 따르면 가치 중심 농업은 단순히 생산량이나 경제적 이익을 따지는 게 아니라 소비자의 입장에서 어떤 가치와 스토리를 가진 농산물을 생산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일을 뜻한다.

김 교수는 미국의 내파밸리를 예로 들었다. 내파밸리에선 포도 수확 철이 아닌 겨울에는 빈 포도밭에 다양한 경관식물(잡초)을 심어 관광상품으로 활용하고 있다. 김 교수는 “‘생태계 서비스’라는 관점에서 기존의 관행적 연구에서 벗어나 다양한 관점에서 활용도를 높여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한국형’ 유전자변형작물(GMO)에 대한 비전도 제안했다. 현재까지 개발된 유전자변형작물은 대부분 잡초·해충 방제를 쉽게 하기 위해 제초제 내성과 해충 저항성을 늘린 작물들이다.

하지만 김 교수는 “미국과 브라질 등 대규모 영농 체계를 위해 개발된 유전자변형작물은 우리나라 농업에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한국의 소비자와 농업 환경을 고려한 한국형 유전자변형작물, K-GMO가 개발돼야 한다”고 밝혔다. 

 

■ 김도순 세계잡초학회장…

△서울대 농대 졸업 △영국 브리스틀대 농학 박사 △LG화학 제초제 연구팀장 △서울대 교수 △세계잡초학회 부회장 △아시아태평양잡초학회 사무총장 △한국잡초학회 부회장 △한국농약과학회 부회장 △서울대 평의원회 부의장 △한국영상식물학회 회장 △세계잡초학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