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나무와 오동나무
[자료출처 : 차길진의 갓모닝 - 일간스포츠 2015.11.5. ]
예기에 의하면 ‘아버지께서 돌아가시면 대나무 지팡이를 짚고, 어머니께서 돌아가시면 오동나무 지팡이를 짚는다’고 했다. 곧은 대나무는 대대손손 자손을 이어나가라는 의미에서 아버지를 상징하고 자랄수록 속이 비는 오동나무는 자신의 모든 것을 자식에게 바치는 어머니를 상징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 옛날에는 아버지께서 돌아가시면 ‘아이구, 아이구’하고 곡을 했고, 어머니께서 돌아가시면 ‘어이구, 어이구’하고 곡을 하는 등 곡소리도 조금 달랐다. 아버지의 상여가 나가면 대나무 지팡이를 짚고 따라갔고 어머니의 상여가 나가면 오동나무 지팡이를 짚고 따라갔다. 항간에는 때에 따라 오동나무 대신 버드나무를 쓰기도 했다. 버드나무 역시 아래를 향해 부드럽게 늘어진 모습이 사랑으로 감싸주는 어머니를 닮아서였다.
그러나 이제는 상주가 대나무 혹은 오동나무 지팡이를 짚는 풍속이 많이 사라졌다. 이제는 장례식장에서 상주는 검은 정장에 얇은 베옷만 입을 뿐이다. 불편한 유교식 상례는 모두 간편하게 바뀌었다. 발인 후에는 상여 대신 고인의 관을 실은 검은 리무진과 유족이 탄 버스가 따라간다.
40~50년 전만해도 우리의 상례는 유교식이었다. 내가 12살 때 아버지께서 돌아가시자 상주가 됐다. 한 여름에 5일장을 하게 되었는데 초등학생이었지만 몇 겹의 두꺼운 베옷을 마치 갑옷처럼 껴입고 대나무 지팡이를 짚고 있던 것이 기억에 선명히 남아있다. 게다가 상주는 잠을 자면 안 됐다. 5일 내내 잠을 못 자게 하니 까딱하다가는 서서 졸 판이었다.
상여가 나가는 날에는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무거운 베옷은 비에 젖어 그야말로 천근만근이었다. 이제는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슬픔보다도 내 몸 하나 가누기 힘들어지고 말았다. 눈물도 말라버리고 머릿속엔 빨리 장례식이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때는 대나무 지팡이의 의미조차 모를 때였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슬픔도, 눈물도 몰랐다. 이제 나이 칠십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58년 동안 눈물로 보냈던 날들이 떠오른다. 왜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그토록 고된 장례식을 해야 하는지 뒤늦게 깨닫게 된 것이다.
흔히 자식을 표현할 때 두부라고 한다. 아버지의 짠 간수와 어머니의 맑은 담수가 엉겨 두부가 나온다. 바다와 강물처럼 양과 음이 섞여야 두부 한 모가 나온다. 나를 창조한 분은 하느님이지만 제2의 창조주는 부모가 아닌가. 그래서 모든 종교는 부모에게 잘 하라고 말하는 것이다.
언제부턴가 서양의 풍습이 들어오고 그 편리함을 따라하다 전통의 절차들이 점점 간소해지고 있다. 옛것이라고 무조건 고수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상례 절차에는 그 나름의 의미가 있는 것이다. 왜 부친상엔 대나무 지팡이를 짚어야 하며 모친상에는 오동나무 지팡이를 짚어야 하는지 그 의미를 알아야 한다. 시대에 맞춰 예법은 간소해지더라도 그것이 갖는 근본정신만은 절대 간소해져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