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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농정]③ 신뢰 잃은 농산물 수급 조절…농민마저 “시장에 맡겨라”

찬란원 2023. 6. 13.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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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출처 : 조선일보  2023.05.13 ]

물가 안정하겠다며 공급 늘렸다가 가격 폭락 유발
유통구조 개선 시급한 한우는 ‘감산’ 우선 추진
의무격리 반발하던 정부, 돌연 쌀 “적극격리 추진”

 

충북 청주시 서원구의 정부양곡창고 장원산업에 톤백에 담긴 쌀 포대가 줄지어 있다. /김민정 기자

작년 하반기부터 정부의 최우선 과제는 물가 안정이었다. 월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5%를 상회하는 고물가로 가계 소비가 위축되는 가운데, 공급 부족으로 신선식품 가격이 급등할 조짐을 보이며 비상이 걸렸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작년 8월 강원도 강릉의 대표적인 고랭지 농사 지역인 안반데기를 찾아 배추 수급 상황을 직접 확인했을 정도였다.

 

농산물 물가 안정을 담당하는 농림축산식품부는 비축 농산물의 시장 방출을 확대하는 방법으로 물가 안정에 나섰다. 공급을 풀어 가계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생각이었지만, 결과는 처참했다.

 

수요보다 많은 양이 시장에 풀리면서 농산물 가격이 폭락했다. 배추 가격이 2개월여만에 3분의 1토막이 났다. 산지에서는 배추를 판매해서 얻을 수익보다 수확에 들어가는 비용이 더 많이 소요됐다. 농가들은 배추 출하를 중단하고, 밭을 갈아 엎어야 했다.

서울 시내 대형마트에 진열된 양파 모습. /뉴스1

◇ 정부 가격 조절 실패 사례 보니… 이유가 있다

 

최근에는 수확기를 맞은 양파가 도마 위에 올랐다. 정부는 올해 초 양파 가격 안정을 위해 제주산 양파의 조기 출하를 결정했다. 그럼에도 가격이 잡히지 않자, 농식품부는 지난 9일 저율관세할당(TRQ) 수입 양파 물량을 2만t 늘리겠다고 밝혔다.

 

국내에서 생산하는 농축산물은 수급 상황에 따라 가격 등락이 심하다. 정부가 비축과 방출을 통해 ‘줄타기’를 하며 수급을 조절하고 있지만 결과는 시원찮다. 소비자들은 비싸다며 구매를 꺼리는데, 농가에서는 타산이 맞지 않다며 아우성이다.

 

13일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농산물유통정보에 따르면 양파 1㎏당 가격(10일 기준)은 1478원으로 1년 전 대비 95.2% 올랐다. 정부는 양파를 비롯해 감자, 무 등 주요 작물의 가격이 6월까지는 강세를 보일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정부가 물가 관리 차원에서 급하게 할당관세 수입 물량 확대에 나섰지만, 농업계에선 6월 이후 양파 가격 폭락 사태를 우려한다. 지난해 하반기 배추와 같은 상황을 양파도 맞닥뜨릴 수 있다는 것이다.

 

농가들은 인건비와 비료비 등 생산 비용이 급증한 상황인데, 이를 고려하지 않고 작년과 평년 가격을 토대로만 적정 가격을 평가한다며 반발하고 있다. 전국양파생산자협회·전국마늘생산자협회는 지난 1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집회를 열고 “양파 수확기에 접어드는 4월말부터 양파를 수입하고 있다”며 “어떤 정부도 하지 않았던 일”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차라리 시장에 맡겨라”라고 주장했다. 정부의 오락가락 수급 조절보다는 차라리 시장이 결정하는 가격이 합리적이라는 것이다.

 

한우도 비슷한 상황이다. 축산농가들은 산지 한우 값이 폭락해 소를 도축해도 사료값도 안나온다고 하지만, 소비자들은 비싸서 한우를 못먹겠다고 한다.

 

한우 가격에 대한 생산자와 소비자의 동상이몽은 다단계의 유통 과정에서 마진이 붙어 산지 가격과 소비자 가격이 벌어지면서 발생하는 문제다. 유통단계 간소화가 해법이지만, 농식품부가 내놓은 답은 ‘암소 개체수 감소’였다. 정황근 농식품부 장관은 지난 2월 국회에서 한우가격 안정 대책과 관련해 “한우의 공급 과잉 해소를 위해 2024년까지 암소 14만마리를 감축하겠다”고 밝혔다.

 

문제는 암소 감축을 통한 과잉 공급 해소가 생산 단계에서의 도매가 폭락만 고려한 해법이라는 점이다. 소비자들이 한우가 비싸다고 인식하는 상황에서 생산 가격만 고려해 감산을 추진하면 소비자 가격은 오를 수밖에 없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소비자들은 현재 한우 가격의 50% 수준을 적정한 가격으로 보고 있다”면서 “감산으로 소비자 가격이 오르게 될 경우, 소비자들의 한우 외면 현상은 더 짙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처럼 농축산물의 가격이 폭등과 폭락을 반복하고, 소비자들의 눈높이에 맞지 않는 가장 큰 이유로는 ‘파편화된 생산구조’가 거론된다. 소농 중심 생산 구조로 규모의 경제를 이루지 못해 발생하는 비효율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한 경제부처 고위 관계자는 “농민이 되기만 하면 받을 수 있는 면세유 제공 등의 지원 대책은 소농만 양산해 농촌 경제를 더욱 파편화하는 결과를 내고 있다”며 “농민 보호를 위한 지원 정책의 실효성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황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27일 서울 서초구 aT센터에서 열린 가루쌀 미래 비전 선포식에 참석해 제품을 소개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 제공

◇ 의무격리 ‘No’하더니 돌연 ‘적극격리’… 오락가락 농정

 

대한민국 식량안보의 핵심인 쌀도 몇 년 째 수급 조절에 실패하고 있다. 저출산·고령화와 식습관 변화로 쌀 소비는 빠르게 감소하는데, 생산량 감소 속도는 더디다. 이미 ‘과잉 공급’이 구조화됐다는 평가까지 나온다.

 

시장에 쌀이 남아 돌고, 도매 시장에선 남아도는 쌀을 비싸게 살 이유가 없다. 농사를 지은 비용도 회수하지 못할 정도로 쌀값이 떨어지자, 야당이 남는 쌀을 정부가 의무적으로 매입하는 양곡관리법 개정안까지 밀어붙였을 정도다. 정부는 의무 매입이 쌀 과잉 생산을 고착화하고, 국가 재정 누수를 키울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했지만, 야당은 ‘여소야대’를 무기로 양곡법 개정안 처리를 강행했다.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양곡법 개정안 사태는 윤석열 대통령이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며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일단락됐다.

 

전문가들은 쌀 과잉 생산 구조를 해소하기 위해선 감산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정부도 농가들이 남아도는 쌀 대신 가루쌀이나 논콩, 조사료 등 타작물을 벼 대신 심도록 유인하기 위해 ‘전략작물 직불금’ 제도를 도입했다. 농식품부가 2월 15일부터 4월 20일까지 전략작물 직불금 신청을 받은 결과, 농민 9만여명이 13만ha의 논에 전략작물을 심겠다고 신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4월 초 정부가 쌀값 안정 대책으로 ‘목표가격 20만원’과 ‘적극적인 격리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밝히면서 기류가 바뀌고 있다. 충북 영동에서 농사를 짓는 한 농민은 전략작물직불금을 신청했다가 취소했다. 이 농민은 쌀값 하락을 걱정해 전략작물 전환을 고려했으나, 정부가 쌀값 보장을 위해 적극적인 격리에 나서겠다고 하자 결정을 철회한 것으로 전해졌다.

쌀 감산을 위해 보급 품종을 전환하는 것을 두고도 농가에선 불만이 쏟아진다. 앞서 농식품부는 지난 3월 ‘2024년 하계 파종용 벼·콩·팥 종자 공급 계획’을 발표하면서 다수확품종인 ‘신동진’과 ‘새일미’ 종자 공급을 절반 이상 줄이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신동진의 대체 종자로 참동진과 강대찬을 공급할 방침이다.

 

신동진은 대표적인 다수확품종으로, 국내에서 가장 많이 재배하는 품종이다. 쌀알이 굵고, 밥맛이 좋다는 평가를 받는다. 농가가 품종 전환에 반발하는 이유이다. 한국후계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는 정부의 품종 보급 계획에 대해 “많은 수의 쌀 농가가 학습과 신품종에 대한 정보도 없이 품종을 전환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신동진 품종을 재배해 온 지역의 쌀 산업을 저해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쌀 감산 및 농업 구조 개선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고령화’ 등 구조적인 문제에 대한 고민이 보이지 않는다고 꼬집는다. 한 농업연구기관의 연구위원은 “쌀값이 폭락하더라도 대다수의 농가가 쌀 농사를 포기하지 못하는 것은 높은 기계화율로 노동력이 적게 들기 때문”이라며 “품종만 제시할 게 아니라 농법 개선, 농업 시설에 대한 R&D 등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