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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난세상

[유전자가위 혁명]④ 타고난 질환, 건강한 유전자로 고치는 마법의 신약이 온다!

by 찬란원 2023. 1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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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 편집 치료제 ‘엑사셀’ 내달 미 FDA 승인 앞둬
인간의 DNA 고쳐서 질병 치료하는 시대 열렸다
한국도 유전자 편집 기술력은 세계 최고 수준
10년 뒤 38조 세계 시장 잡으려면 인프라 지원 필수

 

[ 자료출처 : 다음 - 조선비즈   2023. 11. 25. 이종현 기자 ] 

 

1993년 개봉해 전 세계적인 흥행을 한 ‘쥬라기 공원’을 현실로 만드는 기술이 유전자 가위다. 영화에서는 호박에 갇혀 있던 모기의 피에서 공룡 DNA를 찾아낸 뒤에 개구리 DNA를 잘라 붙이는 방식으로 공룡을 되살렸다.

SF 영화로만 여겨졌던 기술이 30년이 지난 지금은 현실을 바꾸고 있다. 유전자 교정을 통해 생산성을 높이고 질병에 대한 적응력을 높인 작물이 미국과 일본에서 판매되고 있고, 난치병 치료제도 조만간 시장에 나올 것으로 보인다.

한국도 유전자 가위 기술의 선두를 달리는 국가다. 하지만 미국이나 일본 같은 경쟁국에 비해 과도한 규제 탓에 상업화는 늦어지고 있다. 조선비즈는 6회에 걸친 기획을 통해 유전자가위 기술의 현재와 가능성을 짚어보고, 규제 개선 방향을 제시하려고 한다.[편집자 주]

미국의 버텍스 파마슈틱컬스와 CRISPR 테라퓨틱스가 개발한 혈액질환 치료제 '카스게비'가 영국에서 세계 최초로 승인됐다./MHRA

 

지난 11월 16일은 수천년을 이어온 질병과의 전쟁에서 인류가 승기를 잡을 수 있는 중요한 마일스톤으로 기억될 날이었다. 이날 영국 보건당국은 유전자 가위 기술을 이용한 세포 신약 치료제 ‘카스게비’의 판매 허가를 냈다.

유전자 가위가 사용된 치료제가 판매 허가를 받은 건 역사상 처음이다. 세계적인 유전가 가위 석학인 김진수 전 서울대 교수는 “인류 최초로 DNA를 고쳐서 질병을 치료하게 된 것”이라며 “신약 개발의 역사에 기념비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카스게비는 미국 버텍스 파마슈티컬스와 스위스 크리스퍼 테라퓨틱스가 공동 개발한 겸상적혈구증후군 및 수혈 의존성 베타 지중해 빈혈 치료제다. 우리에게는 미국 브랜드명인 ‘엑사셀’로 더 잘 알려진 치료제다. 겸상적혈구증후군은 전 세계에 약 500만명의 환자가 있는 대표적인 유전병이다.

적혈구 막을 끈적거리게 만드는 혈관 폐쇄성 위기 같은 심각한 합병증을 동반하는 병이다. 지금까지는 골수이식이 유일한 치료법이었는데 유전자 가위가 등장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엑사셀은 체외 편집 방식을 사용한다. 환자의 혈액 줄기세포를 채취해서 몸 밖에서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이용해 편집한 뒤에 다시 환자에게 주입하는 방식이다.

헤모글로빈 생성을 막는 ‘BCL11A’ 유전자를 유전자 가위 기술로 없애서 적혈구에서 산소 전달 능력이 큰 ‘태아형 헤모글로빈’을 만들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임가영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뇌과학연구소 선임연구원은 “태아형 헤모글로빈은 원래 태아 발달 초기에만 발현하고 성장하면서 발현이 억제된다”며 “겸상적혈구증후군은 성인 헤모글로빈 결함으로 발생하는 유전성 혈액질환인데, 망가진 성인 헤모글로빈의 기능을 대체할 수 있는 태아형 헤모글로빈을 발현시키는 치료 전략으로 이해하면 된다”고 말했다.

엑사셀이 기대를 모으는 건 임상 결과가 기대를 뛰어넘기 때문이다. 지난 6월 발표된 임상 결과에 따르면, 겸상적혈구증후군의 경우 17명의 환자 가운데 16명이 치료 목표를 달성했고, 수혈 의존성 베타 지중해 빈혈은 27명의 환자 가운데 24명이 치료 목표를 달성했다.

특히 겸상적혈구증후군 환자의 경우 단 한 명도 부작용이 발견되지 않았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겸상적혈구증후군에 대한 엑사셀 승인 여부를 오는 12월 8일 발표할 예정이다. 부작용 사례가 있었던 수혈 의존성 베타 지중해 빈혈은 내년 3월 30일까지 결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 연구 성과는 이미 세계 최고 수준… 상업화 지원 필요

 

지금도 새로운 약이나 치료제는 계속해서 등장한다. 그런데도 의료계가 유전자 가위에 주목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유전자 가위가 기존의 의학적인 방법으로는 치료가 어려운 난치성 질환을 치료하는 완전히 새로운 해결책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유전자는 생명체의 근원이 되는 정보를 담고 있다.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생기면 다양한 기능에 문제가 발생하고, 심하면 죽을 수도 있다.

인간 유전자에 생기는 돌연변이가 일으키는 질병만 해도 주요 사례가 7만5000개가 넘는다. 바꿔서 말하면 유전자에 생기는 돌연변이를 정상으로 되돌릴 방법만 찾으면 수만 가지 질병을 치료할 수 있게 된다는 의미다.

유전자 가위 기술, 특히나 3세대 유전자 가위인 크리스퍼 카스9(CRISPR-Cas9)이 불가능으로 여겨졌던 이 일을 가능케 했다. 카스9은 세균 안에서 발견된 유전자를 잘라내는 효소를 말한다.

가이드 RNA가 지정하는 위치에서 유전자를 잘라주는데, 우리가 흔히 ‘유전자 가위’라고 했을 때 가위가 바로 카스9이다. 크리스퍼는 어디를 자를 지 알려주는 가이드 RNA 정보를 담고 있는 유전자 서열을 뜻한다.

유전자 가위 기술을 가상으로 구현한 그림. 이 그림처럼 가위를 이용하는 것은 아니지만 효소를 이용해 특정 유전자 부위를 잘라내는 기술을 유전자 가위라고 부른다. /조선DB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기술이 발달하면서 이제 사람의 몸 안에서 문제가 있는 세포를 얼마든지 교정하는 게 가능해졌다. 최근에는 원하는 모든 형태의 유전자 교정이 가능한 ‘프라임 편집기’라는 기술도 나왔다.

김형범 연세대 의과학과 교수는 프라임 편집기 관련 기술로 세계적인 연구 성과를 내기도 했다. 김 교수 연구팀이 만든 기술은 인공지능(AI) 모델을 이용해 프라임 편집기를 더 정밀하고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게 해줬다.

배상수 서울대 의과대학 교수도 초정밀 염기교정 유전자가위 기술을 개발해 전 세계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배 교수는 국내 연구진과 함께 레버선천성 흑암시(LCA), 이영양형 수포성 표피박리증 질환(RDEB), 티로신혈증(HT1), 크라베(Krabbe) 같은 선천성 유전질환 치료법을 찾고 있다.

배 교수는 조선비즈와의 인터뷰에서 “프라임 편집기보다 더 많은 염기를 한번에 넣거나 뺄 수 있는 유전자 편집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며 “DNA 염기서열을 수천 개를 한번에 넣거나 뺄 수 있게 되면 유전자 치료의 게임체인저도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기업 중에도 유전자 치료제 시장에 뛰어든 곳들이 있다. 김진수 전 교수가 만든 툴젠이 대표적이다. 툴젠이 유전자 가위 기술로 개발하고 있는 카티(CAR-T) 세포치료제 ‘CTH-004′는 호주 카세릭스에 기술 이전한 고형암 치료제 후보물질이다. 현재 글로벌 임상 1상을 진행 중이다.

툴젠은 ‘CTH-004′외에도 ‘TG-001(샤르코마리투스병’ ‘TGT-101(노인성황반변성질환)’ ‘TGT-LBP(B형 혈우병)’ 같은 치료물질을 유전자 가위 기술로 만들고 있다.

진코어도 초소형 유전자가위 기술을 이용한 치료제 기술을 개발해 미국 20위권 제약사에 기술 수출을 성공했다. 안과 질환과 뇌질환에 대한 체내 유전자편집치료제를 개발 중이다.

이외에도 카스큐어 테라퓨틱스, 무진메디 같은 기업도 유전자 가위 기술을 이용해 치료제 개발을 진행 중이다.

다만 국내 기업들은 기술 수준이 높은데도 임상에 대한 부담감이 커서 해외 제약사와 공동 개발을 추진하는 게 대부분이다. 유전자 편집 치료제에 대한 임상 경험이 있는 국내 제약사가 전무하고, 관련 제도나 법 체계도 갖춰져 있지 않다보니 기업들이 해외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유전자 가위를 연구하는 한 정부출연연구기관의 책임연구원은 “유전자 편집 치료제의 가격이 워낙 고가이다보니 국내에서 임상을 하기에는 인프라가 부족하고 보험급여 적용 등 현실적인 문제가 많다”며 “유전자편집 치료제에 대한 세계적인 추세를 따라가려면 임상 인프라 구축과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유전자 편집 치료제 시장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 조사 업체인 프리시던스 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69억4000만달러였던 유전자 편집 글로벌 시장 규모는 2032년에 299억3000만달러(약 38조8300억원)까지 성장할 전망이다. 10년 사이 4배 이상 커지는 것이다.

그래픽=손민균

 

임가영 KIST 선임연구원도 “기술의 완성은 활용이지만 한국은 각종 규제 탓에 시도조차 어려운 부분이 많다”며 “유전체 편집 기술이 치료에 적용된 사례는 모두 해외에서만 보고되고 한국에선 뉴스로만 접할 수밖에 없어 아쉬움이 크다”고 말했다.

임 선임연구원은 “유전체 편집 기술이 빠르게 성장하는 만큼 시장 선점을 위해 연구개발 규제는 풀어주고 정확한 분석으로 검증 데이터를 축적하는 게 맞다고 본다”고 말했다.

 

◇임상 도중 부작용으로 사망하기도… 윤리 문제도 숙제

 

유전자 가위를 이용한 치료제는 가능성만큼이나 아직 한계도 뚜렷하다. 지금의 유전자 편집 치료제는 적용할 수 있는 질병이 한정적이다. 대부분의 유전질환에 유전자 가위를 적용하려면 체내 교정이 필수인데, 현재 개발된 치료제는 대부분 체외 교정 방식이다.

체내 교정은 나노입자나 바이러스 같은 전달체에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탑재한 뒤 질환이 있는 조직이나 장기에 직접 투입하는 방식이다.

체내 교정 방식은 이제 막 임상이 시작된 수준이다. 미국 생명공학기업인 버브테라퓨틱스는 최근 미국심장협회 연례회의에서 체내 교정 방식으로 유전자 편집 치료제를 투입해 나쁜 콜레스테롤로 불리는 저밀도 지질단백질(LDL) 수치를 낮춘 임상 결과를 발표했다.

주사 한 방으로 콜레스테롤을 낮췄으니 대단한 성과처럼 보이지만, 발열과 두통, 몸살 같은 심각한 부작용이 있었다. 심지어 심장 질환을 가지고 있던 한 임상 참여자는 5주 뒤에 심장마비로 숨지기도 했다. 버브테라퓨틱스 주가는 이 사실이 알려진 직후 40% 폭락했다. 유전자 편집 치료제의 명암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다른 기업들의 체내 유전자 편집 치료제 임상 결과도 마땅치 않다. 미국의 유전자 편집 치료제 개발 기업인 에디타스메디신은 유전성 실명 환자를 위한 치료제 ‘EDIT-101′ 개발을 진행했지만 작년 말 임상을 중단했다. 14명의 환자 중 치료 효과를 보인 환자가 단 3명뿐이었다.

유전자 편집 치료제의 높은 가격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상용화를 앞둔 엑사셀은 치료 비용이 400만달러에서 600만달러 사이로 책정될 전망이다. 최고가 치료제 기록을 갈아치우는 셈이다. 엑사셀의 평생 치료비용은 한화로 50억~75억원 사이로 책정된 것으로 전해진다.

윤리적인 문제도 유전자 가위 기술의 확산을 막는 걸림돌이 되고 있다. 2015년 전 세계 과학계가 유전자를 편집한 인간 배아를 착상하는 것은 비윤리적인 행위라는 선언을 했지만, 어디까지난 선언에 그쳤다.

2018년에는 중국의 허젠쿠이 교수가 유전자 편집 아기가 태어났다고 발표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당시 허 교수는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에 저항성이 있는 쌍둥이 여자아이 2명을 출산하는 데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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