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출처 : 조선일보 Chosum Biz 김민정 기자 2022.01.22 ]
떡 시장판도 바꾼 ‘굳지 않는 떡’
900곳에 기술이전… “근무 환경 바뀌었다”
“10년간 기술 발전 거듭…80% 떡에 적용”
“떡은 우리 고유식품…수출 경쟁력 있어”
“새벽에 떡을 찌고 10시간 이내에 못 팔면 떡이 딱딱하게 굳어 버려지죠. 하지만 1024번의 시도 끝에 발견한 ‘굳지 않는 떡’ 기술이 나온 뒤에는 명절을 앞두고 수요가 몰리기 전 미리 만들어두는 것도 가능해졌습니다. 떡을 미리 만들어도 굳지 않으니 새벽 출근도 사라졌고요. 스티로폼에 랩을 씌워 팔던 떡 포장도 달라졌죠.”
한국이 만든 기술인 굳지 않는 떡. 농촌진흥청은 이 기술을 미국, 중국, 호주 등으로 수출했다. 기술을 개발한 한귀정 농진청 농식품자원부 박사는 지난 19일 조선비즈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식품영양학 박사인 한 박사는 1987년 농진청에 입사해 특허만 47건을 등록했다. 굳지 않는 떡도 그중 하나다. 논문도 74편을 쓴 ‘식품 외길’ 전문가다.
굳지 않는 떡 기술이 발견된 뒤 가장 많이 변한 것은 무엇일까? 한 박사는 “떡의 수명이 변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명절에는 떡이 부족해 못 팔고, 다른 때는 떡이 남아돌아 못 팔았었다”면서 “기술 도입은 떡 시장의 산업화를 이루는 데 주요한 역할을 했다”고 강조했다.
굳지 않는 떡 기술이 도입된 뒤 떡 시장은 근무 환경부터 판매 방식부터 바뀌었다. 한 박사는 “새벽에 떡을 만든 뒤 오후 3~4시가 되면 떡이 굳으면서 한 팩에 3000원짜리 떡이 두 팩에 4000원으로 묶이는 방식으로 가격이 뚝 떨어진다”면서 “이제는 냉장고에 떡을 보관했다 꺼내도 떡이 딱딱해지지 않고 쫄깃해 제값에 판매를 할 수 있고, 굳이 새벽 근무를 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굳지 않는 떡 제조 기술은 전통 떡 제조법에 떡의 미세구조를 만들기 위한 ‘펀칭 기법’과 ‘보습성 유지기법’을 추가한 기술이다. 기술은 인절미와 찹쌀떡, 한과와 시루떡 각각의 공통점과 차별성을 섞어 만든 것으로 첨가물이나 화학적 처리 없이 물리적인 변성을 통해 완성했다.
굳지 않는 떡 제조 기술은 2010년에 발표한 뒤 10여년간 기술의 발전을 거듭해왔다. 멥쌀부터 적용한 기술은 6개월 뒤 찹쌀에 맞춘 기술로 발전했다. 이후 현미와 메밀, 현미, 조 등 다양한 곡물로도 굳지 않는 떡을 만드는 기술을 줄줄이 내놨다. 떡 만드는 기술을 이전한 업체도 900곳에 달한다.
기술을 개발한 한 박사에게 한 기업은 굳지 않는 떡 기술을 140억원에 구매해 독점하고 이적료 20억원을 지불하겠다는 스카우트 제의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단칼에 제안을 거절했다. 한 박사는 “기업뿐만 아니라 대학에서도 다양한 스카우트 제의가 있었다”면서 “그러나 아버지의 뒤를 이어 농진청에서 근무하는 만큼 농진청에서 국가 발전을 위해 기여하는 것이 가업(家業)이라고 생각하고 일한다”고 했다.
한 박사가 내놓은 기술이 도입된 뒤 떡 시장의 판도는 바뀌었다. 그런 그의 공로를 인정받아 한 박사는 2014년 옥조근정훈장을 받기도 했다. 2013년 대한민국발명특허대전에서는 국무총리상을 받았다.
다음은 한 박사와 일문일답.
-설날에 먹는 떡국떡도 굳지 않게 만들 수 있나?
“떡국떡은 보통 5~7분 정도 끓여야 하지만 굳지 않는 떡으로 만든 떡국떡은 1분 정도면 끓일 수 있다. 다만 조리용으로는 굳지 않는 떡을 권장하지는 않는다. 어묵탕 속의 어묵처럼 떡국떡이 붇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떡볶이 떡을 굳지 않는 떡으로 조리할 경우 양념이 잘 배고 조리 시간이 짧다는 장점이 있어 기술을 적용한 떡볶이 제품을 내놓기도 했다.”
-모든 떡에 굳지 않는 기술을 접목할 수 있나?
“가래떡뿐만 아니라 수백 가지 종류의 굳지 않는 떡을 만들 수 있다. 떡을 치대고 성형하는 과정에서 온도와 강도 등을 조절해 굳지 않도록 만드는 기술을 적용한다. 시루떡은 떡을 찐 뒤 성형을 하기 때문에 기술을 접목하기 어렵다. 시루떡 등을 제외한 떡의 80% 정도에 굳지 않는 기술을 접목할 수 있다.”
-기술을 적용해 만든 떡은 언제까지 굳지 않나?
“상온에서는 계절에 따라 최대 4일 정도 말랑말랑한 상태로 먹을 수 있다. 얼마나 위생적인 환경에서 제조했는지에 따라 다르지만 냉장 보관할 경우 4일에서 2주 정도 두고 먹을 수 있다. 냉동보관을 할 때는 6개월 이상 굳지 않는 떡을 먹을 수 있다. 냉동실에 들어간 떡도 냉장실에서 해동하면 쫄깃한 상태로 돌아온다.”
-굳지 않는 떡 기술은 어떻게 만들게 됐나?
“정부가 쌀 소비에 고민이 많았다. 밥쌀 다음으로 떡을 만드는 데 쌀이 많이 쓰인다. 쌀의 47%는 떡으로 소비된다. 떡 소비를 늘려 쌀 소비로 이어지게 하려면 떡 유통 과정의 문제점을 해결해야 한다고 봤다. 시간이 지나면 떡이 굳어버리는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굳지 않는 떡 기술 개발에 집중했다.”
-개발은 얼마나 했나?
“농진청의 장점은 중장기적인 연구계획을 세울 수 있다는 점이다. 10년간 연구 계획을 세우고 하루에 4번씩 떡을 만들었다. 한 달이면 80번, 1년이면 960번이다. 매번 0.1%라도 다른 방식으로 떡을 빚었다. 1024번째 실험 끝에 안 굳는 떡 기술을 발견했다. ‘무한 도전’의 정신으로 축적의 시간을 거쳐 결과를 낸 것이다. 반복 실험으로 72시간까지 떡이 굳지 않았는지 확인하러 실험실에 올라가는 동안 심장이 쿵쾅거리는 소리가 귀에도 들릴 정도로 긴장됐다. 시간이 지나도 말랑한 떡을 발견한 순간 로또를 맞은 기분이 들 정도로 짜릿했다.”
-연구 성공의 비결은 무엇인가?
“떡을 만들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면 연구를 성공적으로 마치지 못했을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집에서 할머니와 인절미나 강정도 만들어 먹고 팥죽도 직접 끓여 먹었다. 직접 요리를 했던 경험들이 있었기 때문에 다양한 성분과 조합을 고민하고 결과물을 낼 수 있었다.”
-900여곳에 기술이전을 했다.
“떡을 전문적으로 만드는 업체부터 영세한 떡집 사장까지 굳지 않는 떡 기술을 배우기 위해 찾아왔다. 3분의 2는 기술을 잘 적용해 떡을 생산한다. 그러나 3분의 1은 기술을 잘 사용하지 않았다. 기존에 떡을 만들던 기술에서 굳지 않는 떡을 만들기 위해서는 몇 가지 공정을 더 거쳐야 한다. 이 과정을 거치는 것이 번거로워 기존 방식을 고집하는 분들이 있었다. 이후 어떻게 응용해 접목할 수 있는지 함께 안내하고 있다.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5팀을 모아 기술이전을 이어가고 있다.”
-굳지 않는 떡 시장은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나?
“굳지 않는 떡으로 라이스 클레이를 할 수도 있다. 찰흙으로 놀이하듯 떡으로 여러 캐릭터를 만드는 등 공예용 재료로도 쓰이는 것이다. 점토와 달리 굳지 않는 떡으로 라이스 클레이를 하면 놀이 도중 먹을 수도 있다. 어린이 방과 후 학습이나 노인을 위한 치매 예방 프로그램으로도 진행됐다.”
-연구에 필요한 자원은 무엇이 있나?
“사람이 부족하다. 농진청의 전체 연구 인력은 1200명인데, 그중 식품을 연구하는 인력은 41명이다. 모든 분야 중 가장 적은 연구 인력이다. 식품 분야에서 특허 47건을 낼만큼 실용적인 성과를 보였는데, 혼자 잘해서는 기존의 한계를 뛰어넘는 성과를 내기 어렵다. 지원이 필요하다.”
-떡 시장이 커지려면?
“젊은 세대가 떡에 관심을 갖고 청년 창업을 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떡 시장이 커지려면 젊은이들이 과감히 뛰어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쌀을 물에 담가 습식으로 떡을 만드는 게 아니라 쌀가루로 떡을 만드는 연구도 진행 중이다. 이제 떡집에서도 제과점이 밀가루로 빵을 만드는 것처럼 쌀가루로 떡을 빚을 수 있는 것이다. 물을 사용하지 않으니 몸에 무리도 덜 가고 위생적으로도 좋다. 빵을 수출하면 세계의 빵과 경쟁해야 하지만, 떡은 우리 고유 식품이라 경쟁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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