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뭇가사리로 마스크팩 만들어
도시광부, 커피 찌꺼기로 만든 필터… 현대차 ‘에어컨’·LG생건 ‘화장품’에 활용
마린팩, 생리대 등에 사용되는 흡수체를 해조류로 대체
식스티헤르츠, 재생에너지 관리 소프트웨어 개발… 현대차·SK에 공급
작년 한반도를 강타한 기록적인 폭우와 남부지방을 덮친 최악의 가뭄은 기후변화의 영향을 실감하게 했다. 하지만 뜨거워지는 지구로 대표되는 기후변화는 우리에게 열대과일과 열대어종 등을 기를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한다. 조선비즈는 기후변화 위기 속에서 새로운 기회를 모색하며 희망찬 미래를 꿈꾸는 농가와 어민, 기업들의 이야기를 소개한다.[편집자주]
커피 찌꺼기를 선심 쓰듯 무료로 나눠주는 카페가 많은데, 자신들이 버려야 할 쓰레기를 소비자에게 떠넘기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 스타트업 도시광부의 나용훈 대표 ]
한국은 성인 1명이 연간 353잔의 커피를 마시는 ‘커피 공화국’이다. 국제커피기구(ICO)에 따르면 2020~2021년 기준 유럽연합(EU), 미국, 일본, 러시아, 캐나다에 이어 세계에서 6번째로 원두를 많이 수입하는 국가가 한국이다. 지난해 말 커피 및 음료점업 점포 수는 9만9000개로 치킨집(8만1000개)보다 많다.
그런데 커피를 뽑아내는 과정에서 나오는 커피 찌꺼기가 환경오염의 원인이 된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커피 1잔에 들어가는 원두 15g 중 에스프레소를 추출하는 데 필요한 건 단 0.03g(0.2%)이다. 나머지는 커피 찌꺼기로 생활 폐기물로 분류돼 버려진다.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우리나라에서 총 14만9038톤(t)의 커피 찌꺼기가 나왔다. 커피 찌꺼기 1만t당 폐기물 처리 비용 10억원이 들고 썩는 과정에서 300kg 이상의 메탄과 이산화탄소가 배출된다.
고려대에서 환경공학 박사과정을 수료한 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서 신소재 및 공정개발과 관련된 일을 했던 나용훈 도시광부 대표의 눈에는 커피 찌꺼기가 탄소로 보였다. 나 대표와 동료들은 2~3년 문헌 연구와 기초 실험을 통해 커피 찌꺼기도 일종의 바이오매스(생물로부터 얻은 에너지)로 탄소를 추출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지난달 15일 오전 인천 서구 환경산업연구단지에 위치한 한 20평 남짓 되는 공장. 나 대표는 높이 3m 정도 되는 다소 생소한 생김새의 기계를 가리키며 ‘커피 찌꺼기 탄소 필터’라고 설명했다.
에어컨, 공기청정기, 가습기 등에 들어가는 필터에는 기체, 습기를 흡수하는 활성탄이 들어가는데 이는 주로 석탄이나 나무(숯)으로 만들어진다. 도시광부는 이를 대신해 커피 찌꺼기를 이용, 활성탄을 만들었다. 커피 찌꺼기가 탄소를 비롯한 유해물질을 거르는데 사용되는 것이다.
도시광부의 신선한 아이디어에 대기업의 러브콜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상반기부터 현대자동차가 자동차 에어컨에 커피 찌꺼기로 만든 필터를 사용하기 위해 도시광부와 협업하고 있다. LG생활건강 역시 지난해 상반기부터 화장품에 들어가는 미세 플라스틱 소재의 스크럽(피부의 각질을 제거하기 위해 미세한 알갱이들을 포함하고 있는 크림)을 천연자원을 이용한 스크럽으로 바꾸기 위해 도시광부와 손을 잡았다. 2019년 SKC는 도시광부와 협업을 통해 식용 탄소에 대한 원천기술 확보를 위한 국내 특허 출원을 진행했다.
커피 찌꺼기가 탄소 필터로 변신하기 위해서는 ▲커피 찌꺼기의 수분을 없애는 ‘건조’ 과정 ▲이물질을 제거하는 ‘선별’ 과정 ▲열분해 공정을 통해 탄소를 추출하는 ‘추출’ 과정 ▲탄소를 농축하는 ‘활성화’ 과정 ▲열을 내리는 ‘안정화’ 과정 ▲일정한 크기의 탄소를 수집하는 ‘수집’ 단계를 거친다.
필터는 구멍을 많이 내야 정화 효과가 좋다. 표면적이 늘어나 오염물질 흡착량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커피 찌꺼기를 활용한 필터는 1g당 1000제곱미터(m²)의 표면적을 가진다. 이는 일반 숯으로 만들어진 필터(1g당 300m²)보다 3배 이상이다.
커피 가공 공장에서 운반비만 지불하고 커피 찌꺼기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에 원료비도 들지 않는다. 가공할 때도 이미 로스팅된 찌꺼기를 사용하기 때문에 탄소를 만들기 위해 높은 열을 가해야 하는 단계를 건너뛸 수 있다.
다만 커피 찌꺼기로 만든 탄소 필터는 석탄이나 숯으로 만든 필터에 비해 가격 경쟁력이 낮다는 단점이 있다. 석탄이나 숯을 사용한 필터는 대량 생산을 할 수 있는 기술적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지만 커피 찌꺼기 필터는 이제 막 소량 생산을 하고 있는 단계라 비용이 많이 든다.
나 대표는 기후변화로 규제가 강화되고 있는 ‘탄소배출권’을 이용해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계획이다. 탄소배출권은 이산화탄소 등의 온실가스를 배출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탄소배출량이 적은 기업은 남는 배출권을 배출량이 많은 기업에 판매를 할 수 있다. 도시광부의 탄소 필터는 커피 찌꺼기가 원료인 만큼 탄소배출량이 없고 이를 판매할 수 있다.
◇ 기저귀·생리대에 들어가는 흡수체, 해조류로 만든 ‘마린팩’
기후변화에서 기회를 찾은 스타트업은 또 있다.
한양대 자원공학과를 졸업하고 9년 간 삼성생명과 삼성화재 등에서 마케팅, 영업관리 등의 업무를 담당해오던 허윤영 마린팩 대표(57)는 해조류의 섬유 조직구조에 대한 충남대 연구진의 연구에 힌트를 얻어 2017년 마린팩을 창업했다.
허 대표는 해조류를 이용해 수분을 쉽게 빨아들일 수 있는 친환경 천연바이오흡수체를 개발했다. 가루 형태인 흡수체는 수분을 빨아들여서 젤 형태로 변해 수분을 가두는 물질이다. 기저귀나 생리대 등에 사용되는 수분흡수체는 빨아들인 수분을 가둬 밖으로 유출되지 않도록 한다. 특히 해조류는 광합성을 통해 대기에 있는 탄소를 포집할 수 있어 기후변화 대응책으로 각광 받는 생물이다.
현재 판매되는 기저귀, 생리대 등 대다수 제품은 미세 플라스틱을 활용한 흡수체를 사용한다. 미세 플라스틱은 화학물질이기 때문에 인체에 악영향을 미치는 환경호르몬을 배출하기도 한다.
마린팩은 게, 새우, 조개 등 갑각류의 껍데기나 오징어 뼈 등에서 나오는 ‘키틴’이라는 물질을 원료로 활용한 흡수체로 미세 플라스틱을 대체했다. 허 대표는 케냐, 마다가스카르 정부와 업무협약(MOU)을 맺어 해조류 소재 확보 루트를 마련한 상태다.
허 대표는 “바닷속은 육지와 달리 수압이나 온도가 일정하기 때문에 해양생물의 조직이 육상생물에 비해 균일하고, 수압을 견디기 위해 조직 구조가 촘촘할 수밖에 없다”며 “외국은 해양생물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지 않은 반면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이기 때문에 해양 관련 연구가 다방면으로 진행됐다”고 말했다.
마린팩의 기저귀와 생리대에 사용되는 흡수체는 1g당 20ml의 수분을 흡수한다. 화학제품(1g당 23ml의 수분 흡수)과 비교해도 흡수효과에서 차이가 크지 않다. 폐기해도 생분해돼 천연 비료로 사용될 수 있다. 비료는 질소와 인산, 칼륨 등으로 구성되는데, 갑각류 껍데기에도 같은 성분이 들어있다.
허 대표는 해양식물이 유분을 흡수하고 수분을 오래 유지할 수 있다는 사실에 아이디어를 얻어 우뭇가사리로 만든 마스크팩을 출시했다. 우뭇가사리 마스크팩은 수분을 오래 머금을 수 있어서 30분 이상 부착이 가능하며, 피부 온도를 낮추는 데도 뛰어난 효과를 가지고 있다.
해조류를 소재로 하는 사업의 경우 인프라가 부족하다는 한계점이 있다. 전 세계에서 연간 생산되는 해조류 섬유원료 소재 생산량이 2만t도 되지 않아 제조원가가 다른 소재에 비해 최대 20배까지 올라갈 수 있기 때문이다. 재배 및 수확이 어렵다는 점도 단가를 높이는 요인 중 하나다. 서구권에서 해조류의 이미지는 생소하기에 소비자들에게 해조류를 이용한 제품을 알리기도 쉽지 않다.
마린팩은 해조류의 ‘효율성’이 곧 경쟁력이라고 밝혔다. 육상식물은 흡수체로 이용할 때 조직구성이 촘촘하지 않아 다른 소재와 섞어 사용해야 한다. 그러나 해조류는 단독으로 사용할 수 있을 만큼 조직이 구성돼있어 효율이 높다는 장점이 있다. 육상식물에 비해 에너지를 적게 소모하면서 채취할 수 있다.
◇ 식스티헤르츠, 재생에너지 발전량 예측해 제공... 현대차·SK가 고객
한국엔 아직 낯선 개념인 재생에너지 유통에 도전장을 내민 회사도 있다. 2020년 설립된 식스티헤르츠는 태양력·풍력·수력 등 재생에너지를 관리하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재생에너지 발전 사용 기업들에 공급한다.
재생에너지 발전소는 화석연료 발전소나 원자력 발전소와 비교했을 때 규모가 작고 수가 많다. 단일 발전소를 관리하는 것과 다른 접근법이 필요하다.
식스티헤르츠는 정보기술(IT)로 기상 정보를 분석해 다음날 재생에너지 발전량을 예측한다. 식스티헤르츠가 개발한 ‘햇빛바람지도’는 기상청 자료를 바탕으로 다음날 발전량을 예측한다. 내일 날씨를 예측해 태양광·풍력 발전소가 얼마나 전기를 생산할 수 있을지 계산하는 것이다. 현재 현대차그룹, SK그룹, 중부발전 등이 식스티헤르츠의 재생에너지 관리 소프트웨어를 이용하고 있다.
식스티헤르츠는 소규모 기업을 대상으로 한 재생에너지 구독 서비스도 시범 운영하고 있다. 재생에너지공급인증서(REC)를 받은 전력을 사용하게끔 발전소와 기업 사이에 다리를 놓는 것이다. REC란 재생에너지 발전 설비를 이용해 전기를 공급했음을 증명하는 인증서다. 전기를 만드는 사업자가 재생에너지 발전량 할당을 채우면 발전량에 비례해 REC를 발급받는다. 일반 기업에서 REC를 구매하면 재생에너지를 통해 생산 활동을 한 것으로 인정해준다.
최근엔 경기도 협동조합들이 생산한 재생에너지를 경기도의 사회적 기업에 공급하는 상품을 개발, 10여 곳에서 식스티헤르츠의 상품을 구독하고 있다. 김종규 식스티헤르츠 대표는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고 지난 1년간 매출이 점진적으로 늘고 있다”며 “재생에너지를 찾는 기업들이 증가하는 것을 피부로 느낀다”고 했다.
김 대표는 독일 유학 시절 재생에너지 전기를 처음 접했다고 한다. 2015년에서 2020년까지 베를린자유대 수학 및 컴퓨터공학부에서 박사과정을 밟으며 독일에서 살던 그는 가정집에서도 재생에너지와 화석연료 에너지 비율을 정해 전기 요금제를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 사업 아이디어를 구상했다.
김 대표는 “독일에선 개인이 마우스 클릭 3번으로 재생에너지를 쓸 수 있더라”며 “한국에선 한국전력공사가 공급하는 전기를 사용한다. 유기농 농산물을 먹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마트에서 유기농 상품을 고르듯 전기도 재생에너지로 생산된 것을 고를 수 있게끔 관련 시장을 개척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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