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 ‘형님·아우’ 하는 보리·밀… 곡식 넘어 기호 식품으로 진화
[ 기사자료 출처 : 조선비즈 & Chosun.com 전주=김민정 기자2024. 5. 20 ]
밀·보리, 국립식량과학원에서 용도별 품종 개발
생육평가회에서 3년 이상 평가 받아야 품종 공개
빵·면·과자용 밀 품종 구분… 건면·생면용도 달라
식량안보 위해 국산 밀 공공비축 규모 늘려
밥·식혜·맥주로 쓰이는 보리… 수출 겨냥한 품종도
디카페인 ‘보리커피’도… 인기에 비해 공급은 부족
보리와 밀은 닮았다. 벼과에 속한 두 작물은 쌀, 옥수수와 함께 인류 문명을 유지시킨 귀중한 식량이었다. 닮은 외형 때문에 한자로 보리는 ‘대맥’(大麥), 밀은 ‘소맥’(小麥)이라고 부른다. 맥(麥)은 보리 맥자로, 동양권에선 밀을 ‘작은 보리’라고 불러온 것이다. 외형만 닮은 게 아니다. 술과 빵, 면 등 다방면에 쓰일 만큼 활용성이 좋고, 품종이 다양하다는 점도 공통점이다. 심지어 국내 재배지가 줄고 있다는 점도 닮았다.
문화적으로 ‘쌀밥’이 부유의 상징이었다면, 보리나 밀은 궁핍의 상징이었다. 가을에 수확한 쌀은 떨어졌지만, 아직 보리는 여물지 않은 오뉴월 ‘춘궁기’를 ‘보릿고개’라고 불렀을 정도다. 아울러 쌀이 부족했던 1960~70년대 박정희 정부는 쌀 소비량을 줄이기 위한 방법 중 하나로 ‘혼분식 장려 운동’을 하기도 했다. 베이비붐으로 인한 인구 폭증기 안정적인 식량 공급을 위해 미국에서 받은 밀을 쌀의 대체제로 보급했다. 얼핏 보면 가난의 상징이지만, 깊이 보면 국난 극복을 함께한 곡물이 바로 보리와 밀이다.
◇ 사용 목적에 따라 품종이 다른 밀·보리
밀과 보리는 가공 목적에 따라 쓰이는 품종이 다르다. 그만큼 품종이 다양하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먼저 밀로 빵을 만들 때는 단단한 강력분이 쓰인다. 글루텐 함량이 13% 이상인 밀가루로, 반죽이 쫄깃쫄깃하다. 라면이나 파스타면을 만들 때도 강력분을 사용한다. 과자를 만들 때는 글루텐 함량이 10% 미만인 박력분을 쓴다. 튀김이나 부침개, 떡도 박력분을 쓴다. 국수나 만두, 수제비 등을 만들 때는 강력분과 박력분의 중간인 중력분을 사용한다.
보리는 크게 겉보리와 쌀보리, 맥주보리로 분류된다. 겉보리는 보리차나 엿기름을 낼 때 쓴다. 쌀보리는 밥에 혼식하는 잡곡류로, 맥주보리는 맥주를 만들 때 원료로 사용한다.
밀과 보리의 국내 소비량은 매년 늘고 있지만, 자급률은 매우 낮은 상황이다. 농촌진흥청에 따르면 밀은 99%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보리의 경우 겉보리나 쌀보리를 일부 국내에서 재배하고 있지만, 맥주보리는 대부분을 수입하고 있다. 특히 보리의 경우, 정부 수매 폐지를 전후로 재배 면적이 급감했다. 2001년 9만641헥타르(㏊)에 달하던 보리 재배 면적은 2012년 2만1200ha로 감소했다. 11년 만에 거의 5분의 1토막이 났다. 현재 보리 재배 면적은 2만5000ha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 농진청, 프리미엄 밀·보리 개발 활발… 품종 개량 성과도
농진청은 재배 면적 감소로 명맥을 잇기 어려운 국산 밀·보리 품종의 개선 연구를 진행 중이다. 농진청은 매년 오뉴월 밀과 보리 추수기를 앞두고 신품종 생육 평가회를 연다. 올해 생육평가회는 지난 8일 전북 전주 농진청 국립식량과학원에서 진행됐다. 전주 국립식량과학원에 밀과 보리가 약 1000㎡ 면적에 빼곡하게 심겨있었다.
평가는 농진청 연구사와 광역지자체의 기술담당자, 외부 위원 등 29명의 평가단이 진행한다. 평가단은 2박 3일 동안 전주를 시작으로 경남 진주, 충북 청주, 경기 수원 등 전국을 돌며 밀과 보리의 생육을 평가한다. 잘 자랐는지, 줄기마다 밀과 보리알이 가득 차 있는지를 중점적으로 살핀다. 병해충 감염 여부도 평가 항목이다.
평가단의 심사에서 좋은 평가를 받은 품종은 이듬해 신품종과 또다시 경쟁을 벌이게 된다. 평가단은 3년 이상 우수한 평가를 받은 품종을 최종 선발한다. 농진청 관계자는 “한해에 겨우 1개 품종 정도가 최종적으로 뽑힌다”면서 “선발된 품종은 새로운 이름을 부여 받고, 농가로 보급된다”고 설명했다.
평가단이 이처럼 공을 들이는 이유는 국내 농가의 수익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프리미엄 밀·보리 품종을 개발하기 위해서다. 최근 성과도 하나둘 나오고 있다.
지난 2019년 농진청은 빵용 밀인 ‘황금알’을 개발했다. ‘품질이 좋고 돈이 되는 밀’이라는 뜻을 담아 작명했다. 황금알은 단백질과 글루텐 함량이 각각 14%, 10%에 달해 고급 빵을 만들기 적합한 품종이라고 농진청 관계자는 설명했다.
밀 가공식품을 잘 소화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오프리’ 품종도 농진청의 자랑이다. 농진청은 지난 2018년 세계 최초로 유전자 변형(GMO)이 아닌 국내 품종 간 인공교배로 알레르기 유발 물질을 제거한 오프리 품종을 개발했다. 오프리는 제과·제빵에 적합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누들(면)용’ 밀도 개발했다. 생면 용도로는 ‘새금강’을, 건면 용도로는 ‘한면’을 개발했다.양조용 밀 ‘우주’도 2022년 개발했다. 우주로 만든 소주는 세계 증류주 대회에서 더블 골드 메달을 따기도 했다.
정부는 밀 수급 안정을 위해 공공비축 규모를 매년 늘리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올해 국산 밀 공공비축 계획 물량은 2만5000톤(t)으로 지난해보다 약 6000톤 늘어났다. 매입 품종은 정부가 보급종으로 내놓은 금강, 새금강, 백강 3개 품종이다.
김경민 농진청 밀 연구팀 농업연구사는 “과거에는 국산 밀 가격이 수입산 밀보다 3~4배 더 비쌌지만, 코로나19와 전쟁 등으로 인해 곡물 가격이 오르면서 현재는 1.5~2배 정도로 가격 차가 좁혀졌다”며 “식량 안보 강화 차원에서도 국산 밀 자급률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건강식 관심에 소비 증가하는 보리… 공급 확대는 ‘숙제’
보리 연구도 활발하다. 보리 품종 개발은 건강식이나 가공식품 상품성 제고에 중점을 두고 진행되고 있다.
농진청은 지난해 식후 혈당 상승을 최소화한 쌀보리 ‘베타헬스’를 개발했다. 보리를 대표하는 식이섬유는 수용성(水溶性)인 베타글루칸이다. 베타헬스는 일반 보리 대비 베타글루칸을 2배 이상 함유하고 있다. 베타글루칸은 소장에서 각종 영양소의 흡수를 방해하는 역할을 한다. 이를 통해 식후 혈당이 급등하는 것을 예방한다.
2021년에는 갈변을 최소화한 엿기름용 겉보리 ‘혜맑은’을 선보였다. 식혜는 쌀밥을 엿기름으로 삭혀 만드는 음료인데, 엿기름은 보리를 원료로 한다. 일반적인 엿기름으로 식혜를 만들면 갈변이 발생해 색이 점점 탁해진다. 혜맑은은 갈변을 유발하는 물질을 줄여, 식혜를 맑은 상태로 유지할 수 있게 한다. 윤영미 농진청 작물육종과 농업연구사는 “최근 식혜는 베트남 등 해외로 많이 수출되고 있다”면서 “식혜가 생소한 외국인들은 탁한 색상에 거부감을 느낄 수 있는데 혜맑은으로 만든 식혜는 갈변하지 않아 외국인들이 선호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보리로 커피를 만드는 연구도 진행됐다. 보리커피는 보리를 커피 원두처럼 로스팅해 커피와 비슷한 맛을 낸다. 농진청은 2019년 검정보리인 흑누리로 보리커피를 개발했다. 디카페인 원두와 흑누리, 일반 원두를 섞어 카페인 함량을 90%가량 줄였다. 완벽한 커피 맛을 구현하지는 못 하지만, 건강을 이유로 대체 커피를 찾는 이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농진청 국립식량과학원 작물육종과는 1962년 작물시험장에서 보리 육종을 시작한 이후 다양한 품종을 개발해 왔다. 지난해까지 겉보리 45품종, 쌀보리 47품종, 맥주보리 25품종 등을 선보였다.
박진천 농진청 작물육종과 농업연구사는 “해외에서는 보리를 대부분 사료용으로 이용하지만, 국내에서는 쌀보리와 겉보리 별로 다양한 품종을 개발해 해외보다 다양한 품종을 보유하고 있다”며 “유전적 다양성과 용도별로 품종을 특화한 것도 강점”이라고 말했다. 윤영미 연구사는 “최근 1인당 보리 소비량이 증가하고 있지만, 국내 공급이 부족해 수입량이 늘어나는 추세”라며 “보리 재배에 대한 정책적 지원을 늘려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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