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카르텔'이 초래한 농작물 산지폐기의 악순환
[자료출처 : 노컷뉴스 광주CBS 조시영 기자 2019-03-13 ]
<농작물 산지폐기의 악순환, 대수술이 필요하다>
⑤ 농민-농협-지자체·정부 '침묵의 카르텔'이 산지폐기 초래
일부 농민들 "산지폐기 있으니 일단 심고 보자"
계약재배 물량 늘지 않는데다 계약 파기도 다반사
농협은 농민들 눈치보며 계약 폐기해도 패널티 안 주고
"농민들 자극해서 좋을 것 없어" 수수방관 지자체·정부까지
◈사상 최대 규모의 산지폐기
올 겨울 동절기 밭작물이 과잉 생산되면서 시장가격과 농가소득 안정을 도모하고자 산지폐기가 전국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올해 산지폐기 규모는 사상 최대 수준이다.
2018년산 배추, 무, 양파, 마늘의 경우 지난 2월 기준 7만 4345톤이 산지폐기 됐다.
산지폐기로 인해 소요된 예산은 전국적으로 194억 원이다.
현재 겨울배추와 무의 산지폐기가 진행 중이어서 산지폐기에 따른 예산투입 규모는 더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올해와 같은 농작물 과잉생산 대란이 일어난 지난 2014년 배추와 무, 양파 등 3개의 작물의 산지폐기에 170억 원이 투입됐는데 이를 넘어서는 수치다. 이와 같은 동절기 농작물의 과잉생산은 울 겨울 유난히 따뜻하고 적당한 강수량을 보이는 등 기후 조건이 좋았던 것을 주 원인으로 들 수 있다.
하지만 그동안 잇따른 수급조절 실패에도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지 않고 관행적으로 산지폐기 방식을 고수한 데에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 침묵의 카르텔이 산지폐기 악순환 초래
기존 수급안정사업인 계약재배의 경우 물량이 좀처럼 늘지 않고 있다.
농민들이 농협과의 계약재배 대신 대형유통 상인들과 포전거래 이른바 밭떼기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실제 2018년 전남지역 겨울배추 재배면적 3644ha 가운데 계약재배 면적은 276.4ha로 전체의 8% 정도다.
같은 해 전남지역 가을배추 재배면적은 3336ha이고 이 가운데 계약재배 면적은 151ha로 5%에 불과하다.
상황은 다른 채소류나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다. 지난 2018년 전국 기준 농협의 계약재배 비중은 배추 7.9% 무 20.4%, 고추 4.7%, 마늘 14.7%, 양파 13.9%, 대파 9.0%, 가을당근 21.4%, 고랭지감자 12.7%다.
계약재배 비율이 턱없이 낮은 상황에서 풍년이 들면서 농작물 가격이 폭락하면 수급조절이라는 명목 아래 산지폐기가 '전가의 보도'처럼 등장한다.
이처럼 특별한 문제의식 없이 산지폐기가 반복되는 이면에는 산지폐기를 묵인하고 이익을 공유하는 농민과 농협 그리고 지자체·정부 간의 이른바 '침묵의 카르텔'이 있다.
다시 말해 '풍년의 역설'로 산지폐기를 하더라도 농민-농협-지자체·정부 모두 서로 이해관계가 맞닿아 있기 때문에 서로 침묵하고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 관행이 수 십 년 동안 되풀이되고 있다.
◈'아스팔트 농사'-농민들의 '도덕적 해이'도 한 원인
먼저 일부 채소 재배 농민들의 경우 사회적 약자라는 지위를 교묘하게 이용한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가 적지 않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채소 농사의 경우 농협과의 농작물 계약재배 비율이 낮은 것도 문제지만 일방적인 계약 파기가 많은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계약 단가보다 시장가가 더 높아지면 산지 유통 상인들이 농가들에게 더 높은 가격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채소 가격이 높게 형성되면 농민들 상당수가 농협과 맺은 계약을 외면하고 물량을 직접 출하하거나 유통 상인을 통해 시장에 내놓는 현상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반면 채소의 시장가가 낮으면 충실하게 계약재배를 이행한다.
농작물 가격 등락에 따라 농민들이 입장을 수시로 바꾸면서 농작물 수급안정을 저해하는 측면이 있다는 얘기다.
심지어 가격이 폭락해 산지폐기에 내몰리는 상황이 되도 농민들이 과거와 같이 큰 손해를 보지는 않는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농협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사회적 약자인 농민을 보호하는 다양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에 농민이 어려운 상황에 닥치더라도 과거보다 큰 손해를 보지 않는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고 했다.
이 때문에 요즘 채소 재배를 하는 농민들 가운데 일부 모럴 해저드가 있는 이들을 일컬어 '아스팔트 농사'를 짓는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는 형국이다.
이에 대해 농민들은 농협과의 계약재배 금액이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채 너무 낮게 책정돼 있다고 항변한다. 한 농민은 "결국 돈을 벌기 위해서 하는 일인데, 너무 터무니없이 가격 차이가 나니, 계약을 파기 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최악의 상황에서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이뤄지는 산지폐기라는 혜택도 계약 재배에 가입하지 않은 농가에도 일정 부분 돌아가니 악순환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조합원인 농민들 눈치 보는 '농협'
농협은 산지폐기를 초래하는 '침묵의 카르텔'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
농협 입장에서는 조합원인 농민들에게 야박하게 굴기 힘든 게 현실이다.
농민들이 계약재배에 따른 계약을 일방적으로 폐기하더라도 농민들에게 페널티를 주는 농협은 거의 없다. 조합원인 농민들이 조합장 선거에서 투표권을 행사하는 현실을 무시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때문에 농민들이 계약을 파기해도 농민들에게 내려지는 제재는 사실상 없다.
해남 한 농협 관계자는 "농협을 운영하려면 조합원 개개인의 눈치를 봐야하는데, 어떻게계약을 파기했다고 농민들에게 제재를 하겠냐"고 반문했다.
굳이 계약 파기 농민들에게 불이익을 준다면 특정 기간 동안 계약재배 참여 배제 정도다.
하지만 설사 계약재배에서 배제되더라도 농민들이 구제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게 아니다.
계약재배율이 낮다 보니 올해처럼 물량이 쏟아질 때는 계약재배에 참여하지 않은 농가의 물량도 정부가 일정 부분 산지폐기로 물량을 떠안아주고 있는 형국이다.
결국 일부 농민들의 도덕적 해이가 있더라도 농협이 농민 눈치를 보고 눈감아주면서 침묵의 카르텔이 형성되는 것이다.
2017년부터는 계약재배 농가를 대상으로 채소가격안정제가 본격 실시됐지만 이같은 문제점이 해소되는 데는 역부족이다.
채소가격안정제에 따른 산지폐기의 경우 관련 예산이 국비 30%, 지자체 30%, 농협 20%, 자부담 20%로 구성돼 있다.
채소가격안정제 참여 농가나 참여하지 않은 농가나 정부나 자치단체 차원의 혜택이 비슷하게 돌아가는 셈이어서, 산지폐기의 악순환이 반복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되고 있다.
◈"농민들 자극해서 좋을 것 없어" 수수방관하는 '지자체·정부'
산지폐기가 반복되는 과정에서 일부 농민들의 도덕적 해이와 농협의 눈치보기 농정이 펼쳐지고 있지만 정부와 지자체는 사실상 수수방관하고 있다.
정부는 농작물 수급안정이라는 명목 아래 매년 100억원 이상의 국민 세금을 투입해 손쉽게 산지폐기라는 정책을 선택하면서도 근본적인 대책 마련을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와 지자체가 일부 농민들의 도덕적 해이를 나 몰라라 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산지폐기라는 '언발에 오줌누기'식 농정에 대한 대수술을 하는 과정에서 농민들 그리고 농민단체와의 갈등이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정부나 지자체 입장에서는 이런 농민단체를 자극해서 좋을 것이 없다는 암묵적인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그러다 보니 정부나 지자체가 농민들이 땀 흘려 재배한 농작물을 산지폐기하는 아픔을 반복하지 않을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하기 보다는 손쉽고 반발이 없는 정책을 선택한다.
특히 지방자치제도 아래에서 농촌지역 자치단체장은 더욱이 농민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엄연한 현실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한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농산업 대부분을 농협에서 맡고 있는데 농협이 과거보다 많이 변화했다고는 하지만 유신 정권에서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키운 조직인 만큼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농작물 수급안정이라는 명목 아래 관행적으로 산지폐기 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이면에는 산지폐기를 묵인하고 이익을 공유하는 농민과 농협 그리고 지자체·정부 간의 이른바 '침묵의 카르텔'이 형성돼 있다는 지적이다.
광주CBS의 기획보도 <농작물 산지폐기의 악순환, 대수술이 필요하다>
다섯 번째 순서로 농작물 산지폐기와 관련해 농민과 농협 그리고 지자체·정부까지 '침묵의 삼각 카르텔'이 형성될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서 보도한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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