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북한간 국경도시 단동시 압록강변 공원에서
▣ 단동 소개 (단둥(Tan-tung)
현급 시로, 그 영역은 그 자치지역뿐만 아니라 북한의 국경지역에 접한 랴오닝 성의 여러 현을 모두 포함하고 있으며 압록강 어귀에서 상류 쪽 약 35㎞ 지점으로 신의주와 마주보고 있다.
1965년까지 안동이라고 불렸던 이 도시의 이름은 7세기 중반 당(唐:618~917)이 남부 랴오닝 지방에 설치했던 도호부의 이름에서 비롯된 것이다.
16세기 후반 명이 이 지방에 진장바오[鎭江堡]라는 요새를 세웠는데 현재 도시의 북동쪽 약 4㎞ 지점에 있다. 이 요새는 명 후기와 청(淸:1644~1911/12) 초기에 중요한 구실을 했다. 단둥 주변지역은 19세기 중반까지도 사람이 거의 살지 않았으나, 1862~74년에 식민을 위해 개방한 이후, 산둥 성으로부터 주민을 옮겨오게 해 급속히 개발·확대되었으며, 1876년에 정규 행정체제를 갖춘 현청소재지가 되었다.
도시가 커짐에 따라 창바이 산맥[長白山脈] 지역의 자연적인 관문이 되었으며 한반도와 만주지방 사이의 무역 중심지가 되었다. 또 농산물, 특히 주변지역에서 생산되는 콩의 집산지가 되었고 목재 수출항으로 더욱 중요하게 되었다. 톈진[天津]·상하이[上海]와 산둥 성으로 수송하는 연안무역용 대규모 정크선단이 발달했으며, 1907년에 무역항이 되어 외국상선이 드나들 수 있게 되었다.
20세기 초반 선양[藩陽:무크덴]과 연결되는 철도건설로 이 도시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게 되었다. 철도는 러일전쟁(1904~1905) 중 일본군에 의해 건설되었기 때문에 포츠머스 조약에 따라 일본의 통제를 받게 되었다. 이 철도건설로 단둥은 만주지방 생산품의 중요한 수출항구가 되었다. 그러나 이 단둥 항은 급속히 흐르는 강과 면해 있고 바다로부터 35㎞ 들어온 곳에 있어 입지조건이 좋지 못했으므로, 일본 점령기간중(1913~45) 압록강 어귀의 둥거우[東溝]에다 수심이 깊은 현대식 항구를 건설하기 시작했으나 끝내 완성하지 못했다.
※ 자료출처 : 다음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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