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헌신
(자료출처 : 차길진의 갓모닝일간스포츠 2019.01.17)
얼마 전 의사 지인을 만났다. 50년 넘게 의사 생활을 하고 퇴직한 그는 단조로운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의사를 그만두니 환자들 생각이 납니다. 예술가에게 그림이 작품이듯, 의사에겐 환자가 작품이거든요. 그런데 최선을 다해 살려 낸 환자들이 찾아오는 경우는 별로 없고, 잘 기억나지 않는 환자들은 정말 감사하다면서 자주 찾아옵니다. 왜 그럴까요?”
그의 말에 나는 웃었다. 어찌 환자만 그러겠는가. 사람은 다 내 마음 같지 않은 것을…. 구명시식도 마찬가지였다. 목숨을 걸고 구명시식을 해 준 신청자들은 그때뿐이고 대부분 다시 찾아오지 않는다. 신청 사연에 감동받아 자손까지 알뜰히 챙겨 줬던 신청자들 중에 지금 곁에 남아 있는 사람은 없다. 내게 감사하다며 찾아오는 신청자들은 대부분 구명시식을 하고도 내가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분들이다.
"사람이 신세를 많이 지면 부담스러워 다시 찾아가기 어려운 것과 같습니다.” 사랑에는 마지노선이 있어 그 선을 넘으면 그때부터는 사랑이 아닌 부담이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주는 사람은 무한한 사랑이 가능하지만, 받는 사람은 무한히 받지 못한다. 그래서 사람이 받을 수 있는 사랑에는 한계가 있다.
언젠가 남자친구의 배신으로 목숨을 끊은 간호사 영가를 위한 구명시식을 올린 적이 있다. 그녀는 고시 공부를 하는 남자친구를 헌신적으로 뒷바라지했다. 3교대를 하는 힘든 병원 생활로 번 돈의 대부분을 남자친구의 학비와 생활비로 송금했다.
간호사 영가는 말했다. “고시에 합격하면 저와 결혼할 줄 알았어요. 하지만 남자친구는 저를 배신했습니다.” 그때 간호사 영가에게 한 말이 있다. “잘못은 당신에게도 있습니다. 받을 수 있는 만큼 줘야 합니다. 줄 수 있는 사랑의 마지노선을 넘었을 때, 그 사랑은 끝난 것이었습니다.” 나는 간호사 영가를 위해 은방울 자매의 '마포종점'이라는 노래를 틀어 주며 위로했다.
인간에게는 참 나쁜 DNA(유전자)가 있다. 과도하게 신세를 지면 자존심이 상하고, 신세를 갚을 수 없는 지경에 다다르면 자연스럽게 떠나게 된다. 언젠가의 일이다. 외국 유명 음대에 다니는 아내를 위해 기꺼이 기러기 생활을 자처한 남편이 있었다. 그는 아내가 음대를 졸업하면 한국에서 교편을 잡을 것이라는 기대에 열심히 아내를 뒷바라지했다.
대기업에 다니면서 월급의 대부분을 아내에게 송금했다. 1년치 학비와 생활비만 해도 엄청난 금액이었지만, 그는 곧 한국으로 돌아올 아내와 행복한 생활을 꿈꾸며 고생을 참고 버텨 냈다. 그런데 아내는 음대를 졸업하자마자 외국의 한 음대에서 교편을 잡게 됐다. 그리고 동시에 청천벽력 같은 이혼 통보를 해 왔다. “저는 한국에 돌아갈 생각이 없어요. 그동안 보내 준 학비와 생활비는 곧 갚겠어요.”
남편은 이해할 수 없다며 나를 찾아왔다. 전후 사정을 다 들은 뒤 나는 조용히 남편을 타일렀다. “돈을 열심히 보냈다고 결혼 생활이 유지되는 것은 아닙니다. 헌신적인 사랑이라 해도 반드시 보답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당신은 그저 적금통장에 돈을 넣듯 아내에게 생활비를 보낸 겁니다. 적금은 기한이 다 되면 깨지 않습니까? 당신이 한 사랑도 적금과 함께 깨진 겁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누군가에게 과도하게 헌신하고 희생하면 문제가 생긴다. 자식에게, 애인에게 헌신적인 사랑에 대한 보답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항상 사람과 관계에서는 부담스럽지 않은 적정한 선을 지켜야 한다. 특히 사랑은 36.5도 체온을 넘어서면 안 된다. 사랑에는 마지막이 없다. 언젠가 또 사랑은 온다. 다음 사랑을 위해 ‘당신의 체온만큼’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hooam.com/ 인터넷신문 whoim.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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